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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읽을 때마다 다른 감흥


[독후 칼럼 혹은 서평/문학과 예술의 향기] 2010/08/23 22:24 Posted by 오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읽힌 고전 딱 한 권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꼽을 것이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도원결의로 시작하는 삼국지의 이야기들은 많은 동양인들의 무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때면 삼국지를 읽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꿈에 삼형제가 나타나 애를 먹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그만큼 인간 무의식의 깊은 층을 파고 드는 마력을 지닌 영원한 고전으로 기능했다.

통상 삼국지의 수명은 30년 정도라고 한다. 삼국지만큼 많은 편역자의 손을 거친 작품도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많이 읽히는데, 지금 다시 꺼내 읽어보니 그의 잡다한 횡설수설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평역자가 나타나 시대정신을 반영한 '삼국지'를 편역하곤 한다.

이번에 도서출판 문장에서 펴낸 남종진, 이향규 편역의『삼국지』는 한 권짜리이다. 10권을 한 권으로 압축했으니, 소설의 묘미는 사라진 것이 사실이나 '삼국지연의'의 핵심적인 사건들은 거의 빠트림없이 압축해 큰 줄거리를 파악해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는 아마도 한 권짜리 '삼국지'가 꽤 유용해 보인다.

묘하게도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 중 좋아하는 주인공들이 매번 바뀌게 마련이다. 삼국지를 처음 대할 대하는 어린 시절에는 나관중이 바라마지 않는대로 유비를 흠모하게 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 유비보다 제갈량이 더 위대해 보이고, 급기야는 조조가 최고의 영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삼국지'를 읽는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에서는 '삼국지'를 읽어보니 장비가 한 없이 불쌍하게 다가온다. '탁현'이라는 시골바닥에서 난데없이 유비와 관우를 만나 따거로 모시면서 주구장창 고생만 하다 솔하병사에게 황천길로 간 그의 삶이 고단하게만 보인다.

침실 안에 이르러 장비를 보니 그는 둥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꼭 처다보는 것 같아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장비는 원래 눈을 뜨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곧이어 장비의 코고는 소리가 우레같이 났다.

그제야 두 놈은 안심하고 함께 달려 들어 장비의 배를 찔렀다. 장비가 외마디소리 크게 지르지 못하고 죽으니, 이때 그의 나이 55세였다.

- 남종진, 이항규 편역,『삼국지』(나관중 지음, 문장, 2010) pp 464-465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장비를 찌른 두 놈은 점강, 장달이라는 두 하급 장수였다. 관우의 죽음에 비분강개한 나머지 부하들을 닥달하다 당한 참변이었다. '삼국지'는 영웅 호걸들의 꿈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읽는 이의 정서에 따라 연애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이처럼 허망한 이야기로도 읽히기도 한다.

아시아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또 편역자들마다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뜨거운 여름이 가기 전에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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