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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 여기 잠들다


[독후 칼럼 혹은 서평/문학과 예술의 향기] 2010/08/22 17:34 Posted by 오르™
무더위를 식히는 데에는 독서 삼매경이 제격이다. 그 중에서도 흥미진진한 소설책 한권을 읽다 보면 금새 오후가 후닥닥 가버린다. 필립 리브의 『아서왕, 여기 잠들다』(오정아 옮김, 부키, 2010)는 아서왕의 신화를 한 소녀의 눈으로 아서왕을 재미 있게 풀어내고 있다. 한 소녀의 눈으로 본 아서왕이기에 마법과 환상 속의 아서왕이 아니라 '현실 속의 인간' 아서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작가 필립 리브는 어린 시절 부어맨이 감독한 영화 <엑스칼리버>를 보고 매혹되어 언젠가 아서왕 이야기를 꼭 소설로 쓰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열살 소녀 '그위나'는 가상 인물이지만, 나머지는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대마법사 '멀린'이 '마르딘'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인물들의 이름도 변형되어 나온다. 작가에 의하면 마르딘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6세기 후반에 같은 이름의 시인이 둘 있었다고 한다.

어째튼 작가가 그리는 아서왕 이야기는 신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노예 소녀 그위나의 모험담이다. 소설은 6세기 초, 브리튼 남서부에 사는 노예 소녀 그위나가 한밤중에 몰아닥친 아서 부대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다 음유시인 마르딘에게 구출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마르딘의 책략에 의해 '그위나'가 '호수의 여인'의 여인이 되어 아서에게 명검 '칼리번'을 건네주는 장면은 영화만큼이나 긴장감이 넘친다. 작가적 상상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위나의 성장 이야기와 아서왕의 신화들을 절묘하게 직조하여 숨 가쁘게 책장을 넘어 가게 한다.

아서의 왕비 그웬휘바르와 베드위르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가슴이 짠해 지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면, 특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베드위르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마르딘의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그는 그웬휘바르의 손을 사랑했다. 그녀의 길고 가는 손가락과 마디의 주름을, 그웬휘바르의 입술 위족에 돋은 엷은 솜털도 사랑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만지면 느껴지는 그 솜털을. 그녀의 등에 움폭하게 들어간 부분도 사랑했다. 날개 뿌리처럼 톡 튀어나온 어깨뼈도 사랑했다. 그녀의 눈썹도 그녀의 목소리도 사랑했다.

베드위르는 그웬휘바르이 친절하고 다정한 성품도 사랑했다. 자신의 품 안에 나른하게 누워 있을 때 그녀가 내는 부드러운 숨소리도 사랑했다.
* 『아서왕, 여기 잠들다』(오정아 옮김, 부키, 2010) pp253-254

일찍이 왕이었고 앞으로도 왕일 자, 아서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를 읽어 보는 것도 유난히 더운 올 여름의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5, 6세기 브리튼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은 아주 적고, 아서에 관해서라면 그가 전투 지휘관으로 언급된 사실만 있을 뿐, 역사적 인물인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인지에 대해서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이 여름 『아서왕, 여기 잠들다』를 읽어며, 작가와 함께 그 시대에 있을 법했던 사랑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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