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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2,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독후 칼럼 혹은 서평/어떻게 쓰고 읽을 것인가] 2010/06/14 23:23 Posted by 오르™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2』(개마고원, 2009)는 정파적 신문 읽기를 벗어나 독자가 자신의 실제 삶이기도 한 경제생활과 정치를 연관 지어 신문을 읽어 나가기를 제안한다.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온전히 보이기 때문이고, 경제와 정치를 함께 읽어야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정치경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경제란 무엇인가? 저자가 말하는 경제란 복잡한 경제이론이 아닌, 신문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광고를 일컫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신문 기사는 팩트에 기초하여 진실과 공정함을 알리는 공론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

특히 한국의 독과점 언론들(저자는 조중동을 '독과점 언론'이라고 지칭한다. 옳은 표현이다)은 광고주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왜곡까지 일삼는다는 것이다. 신문업 자체를 자본주의하의 기업으로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씀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말머리를 빛 바랜 흑백사진을 꺼내며 시작한다. 참여정부 시절 경제 정책의 굴절을 통하여 한국 독점언론들의 폐해를 톺아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2년 4월 경기 지역 후보 경선 연설에서 노무현은 "복지정책을 통해 소득분배를 하고, 이 소득분배를 통해 건강한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주장했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2002년 10월 1일)에서는 "소득 재분배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첫 국정연설(2003년 4월 2일)에서 "분배 문제"를 "집값 안정과 사교육비 부담 경감"으로 대폭 축소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사교육비도 급팽창했다. 집권 5년동안 부익부빈익빈은 커져갔고, 고졸과 대졸 사이의 학력 간 임금 격차도 더 커졌다.

노무현의 경제정책 '전환'은 집권 다섯 달 만인 2003년 7월에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중장기 국가비전으로 공식 설정했다. 대선 후보 경선 때 '분배 중심'에서 후보 결정 뒤 '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로 옮겨간 경제정책이 대통령 당선 뒤에는 '성장 중심'로 변질된 것이다. 그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주창하던 시점에, 수도권의 30대 주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참극이 벌어진 것은 시사적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애초 삼성그룹 이건희가 제기한 이데올르기였고, 신문의 여론화에 힙입어 마침내 분배를 강조하며 출범한 '참여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은 우리가 신문 읽기에서 깊이 성찰해봐야 할 대목이다.

저자가 신문 깊이 읽기의 세 지층으로 강조하는 것은 세계화와 민중, 그리고 이해관계이다. 세계화란 글로벌스탠더드의 다른 표현이고 독점 언론이 사용하는 글로벌스탠더드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이름이다.

한국 신문 독자라면 누구나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대폭 줄여야 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국내 시장을 모두 개방해야 하며,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작은 정부를 구현해야 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기사와 사설을 읽었을게 틀림 없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독과점 언론들이 주로 사용하는 의제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2008년 9월 '종주국'인 미국의 금융위기로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문제는 이제 시기가 지난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금융위기에 아랑곳 없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도저'처럼 강행되고 있다.

왜일까. 독과점 신문들에는 신자유주의의 내용, 곧 기업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감세, 복지 축소, 작은 정부론을 적극 찬양하는 대학교수들의 글이 넘쳐난다. 그것은 거대언론과 학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 '일부 위헌'만 하더라도 경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종부세 과세 대상자로, 그 가운데 7명이 위헌 결정에 손을 들었다는 사실은, 상위 2%의 '계급의식'이 판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수석들과 내각의 장차관들, 한나라당의 지도부에게도 종부세는 불편한 세금이었다. 신문 읽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 신문사의 고위 편집 간부들 대다수가 서울 강남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두환 정권시절 서울 지역의 언론인들 가운데 다수가 서울 강남에 '기자 아파트'를 특혜로 분양받은 사례도 있다.

무릇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해관계와 무관한 정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는 그 이해관계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조율해가는 사회다. 종부세를 둘러싼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은 국민 2%만의 이익을 꾀하는 정책이 어떻게 모든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여론화하고, 더 나아가 어렵게 제정한 법마저 무력화시키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전체 국익으로 호도하는가를 탐색할 때, 신문을 깊이 읽는 눈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추구되는 현실에서 신문 읽기를 통해 자신이 민중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데 매개가 바로 이해관계의 정확한 인식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더는 수동적으로만 읽는 데 머물지 않고 주체적 신문 읽기의 길로 들어설 것을 촉구한다. 궁극적으로는 블로그 등 1인 미디어로서 '직접기자'가 많아지는 '직접언론 시대'의 도래를 염원한다. 

이 책은 신문 읽기의 방법론 외에 역사의 무서움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조선일보는 1980년 5월 25일자 사회면 "무정부 상태 광주 1주/ 바리케이드 너머 텅 빈 거리엔 불안감만…"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이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보도했다.

민주시민을 '난동자'로 쓴 이 기사의 작성자는 그 뒤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쳐 2009년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대중'이다.

- 손석춘,『신문 읽기의 혁명2』(개마고원, 2009) pp 100-101

우리에게 날마다 아침에 건네오는 신문이라는 사과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짚어보아야 한다.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마녀'는 일반 독자들이 신문지면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깊숙이 똬리 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때로는 '거친 색깔 공세'로, 때로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로 민심을 호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이 든 신문의 사례를 수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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