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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의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독후 칼럼 혹은 서평/문학과 예술의 향기] 2010/03/13 23:32 Posted by 오르™
김훈의 장편소설 『공무도하』의 표지는 독특하다. 스크랩한 작가의 원고지를 겉표지로 삼았다. 작가는 연필을 꾹꾹 눌러 쓴다고 했다. 아직도 워드가 아닌 원고지를 쓰다니 우직스럽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와『남한산성』(2007)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역사소설이 아닌 소설에서는 작가의 문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소설가 김훈은 화가가 되었다면 아마도 추상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 만큼 그의 문장은 관념론적인 추상같은 세계에 머물렀다.

어쩌면『공무도하』는 소설로써 성립 불가능한 소설이다. 소설로 취한 말한 이야기의 얼개가 없다. 그것을 반영하듯 이 소설에는 목차가 없다. 주인공 문정수 기자가 신문 사회면에 실릴만한 소재로 이야기를 끌어 갈 뿐이다. 문정수는 가끔 출판사에서 일하는 노목희를 찾아가 섹스를 하곤 한다.

소설『공무도하』는 문정수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 책의 간단한 등장인물들이다. 소방관 박옥출,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의 어머니 오금자, 지방대를 나와 어쭙잖게 노학운동을 하던 장철수, 베트남에서 시집온 후에, 그리고 노목희가 번역하는 "시간 너머로"의 저자 타이웨이 교수.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은 비루하고 치사한 구석이 있다. 무좀처럼 던적스럽기까지 하다. 작가는 그 이야기들을 매마른 무장으로 사회부 기자처럼 기술한다. 숫자가 뒤섞인 작가의 말들은 흡사 군사 상황을 상기시킨다.

지휘차 뒤로 고압펌프차 3대, 사다리차 2대, 앰뷸런스 1대가 따랐다. 심야의 8차선 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없었다. 서남 소방서 선착대는 02시 1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02시 14분에 공격거점을 확보했고, 02 19분에 고가사다리를 7층으로 전개했다.

사다리는 기립각 69도를 이루었다. 인명구조특공조와 파괴수들이 고가사다리를 타고 7층 옥내로 진입했고 관창수들은 수관을 연결해가며 중앙계단을 따라 진공했다.

- 김훈,『공무도하』(문학동네, 2009) p. 98.

던적스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소설 속 공간은 작은 바닷가 마을 '해망'과 경주에서 가까운 '창야'다. 굳이 현실에서 찾자면 해망은 평택 쯤이고 창야는 창녕 쯤이다. 그러나 창녕군에는 호텔도 지방대학도 없다. 작가는 서울은 그대로 쓰면서 지방도시는 관념적으로 창조했다. 

작가의 이러한 문장은 노목희와 문정수의 섹스를 묘사한 문장에서는 멀고 아득한 관념의 강으로 변한다. 정사를 묘사하는 문장에서조차 작가는 사실적이기를 포기했다.

노목희의 몸에서 새벽안개 냄새가 났다. 문정수는 조바심쳤다. 문정수의 조바심이 노목희의 조바심을 일깨웠다. 노목희의 몸은 깊어서 문정수는 그 끝에 닿을 수 없었다. 길은 멀고 아득했고 저쪽 끝에 흐린 등불이 하나 켜져 있는 듯도 했다.

문정수는 그 길 속으로 들어갔다. 길은 멀었고, 먼 길이 조여 들어왔다. 문정수는 투항하듯이 무너졌다. 노목희가 젖가슴으로 문정수의 머리를 안았다. 문정수는 새벽안개 냄새 속에 머리를 묻었다. 문정수의 몸속으로 크고 조용한 강이 흐르는 듯 했다. 노목희가 어둠속에서 말했다.

- 김훈,『공무도하』(문학동네, 2009) p. 130.

그럼에도 김훈의 문장은 매마르면서도 무서운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가 없음에도 어떤 그 무엇이 한 없이 독자를 끌어 당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공무도하』를 읽으면 우울해진다. 삶이 비루해지고 치사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아직 삶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힘에 부대끼는 것일까. 그래서 제목조차 강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하여『공무도하』로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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