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올바른 번역서명은 『중앙은행업의 이론과 실제』이다. 아마 그랬다면 일반독자들이 이 책을 집어들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연방준비위원회 부의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과 신뢰성, 독립성 등을 주제로 행한 로빈즈 기념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앨런 S. 블라인더는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이 장기시계(長期時界)를 요하므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이 되어야 하며, 독립성을 지키려면 신뢰가 핵심이므로 중앙은행 총재는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적격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일반국민에게는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unelected technocrats)인 중앙은행 총재에게 정직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차기 한은 총재는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용기있고 정직한 인사가 됐으면 한다.
또 이 책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긴축인지 확장인지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를 암시해 준다. 바로 '중립적 실질 이자율'이다. 정책금리가 중립적 수준보다 높으면 긴축적 통화정책이고, 낮으면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리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립적 실질이자율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중립적 통화정책(실질 이자율)은 중기에서 일정한 인플레이션 주준을 유지하는 것과 일치한다.
중립적 실질 이자율은 고정된 숫자가 아니며, 많은 요인들 가운데 특히 재정정책과 환율에 따라 달라진다.
중립적 이자율 수준은 측정하기도 어렵고 정확히 알 수도 없다. 따라서 중립적 이자율 수준은 숫자가 아니라 개념으로 간주될 때 유용하다.
- 앨런 S. 블라인더(Alan S. Blinder),『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Central Banking in Theory and Practice』(정운찬. 김홍범 공역, 율곡출판사, 2003) p. 39-46.
중립적 실질 이자율은 고정된 숫자가 아니며, 많은 요인들 가운데 특히 재정정책과 환율에 따라 달라진다.
중립적 이자율 수준은 측정하기도 어렵고 정확히 알 수도 없다. 따라서 중립적 이자율 수준은 숫자가 아니라 개념으로 간주될 때 유용하다.
- 앨런 S. 블라인더(Alan S. Blinder),『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Central Banking in Theory and Practice』(정운찬. 김홍범 공역, 율곡출판사, 2003) p. 39-46.
바꿔 말하면 단기금리를 결정하는 정책금리가 잠재성장률 수준과 같아지면 비로소 '경기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3.5%라고 가정하면, 현재의 2.0%인 기준금리를 몇 차례 올려도 한은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금융완화' 수단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이 책은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의 마지막 수업교재였다. 정운찬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나중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을 지내게 되는 이 책의 저자 앨런 블라인더 교수의 지도를 받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운찬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개설된 서울대 경제학과 '화폐금융론' 강의를 수강하는 4학년 졸업반 학생들에게 이 책의 번역을 리포터로 내주었고, 이와 거의 같은 때에 정운찬의 서울대 경제학과 제자였던 경상대학교 김홍범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여 원고를 보여주어 공동번역으로하여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지도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숙제'로 원서를 번역하도록 하고, 이들의 번역물을 토대로하여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부쳐 번역서를 출간해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삼는 관행이 만연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제 학부생들의 지적 노고마저도 고명하신 교수님들이 가로채 버린다면 가뜩이나 등록금이 비싼 세상에서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이 책의 번역자 명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학부생 일동'이라고 표기할 수는 없었을까. 그래서 인쇄수입은 그들 후배들의 장학기금으로 활용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경제학원리에는 어긋나겠지만!
* 기념강연 원고를 책으로 출간한, 100페이지 남짓한 책 값이 12,000원이라는 사실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 깊이 있는 내용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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