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마크 레빈스의 『THE BOX』(김동미 역, 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08)를 읽고 나면 이 못생긴 컨테이너 박스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THE BOX』는 경제학자 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에 근거한 치밀한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저술한 컨테이너 박스의 탄생부터 오늘날 현대문명의 총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경제학적으로 파헤친 대하 인문역사서이다.
컨테이너가 항구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무렵 항구의 풍경과 변화, 컨테이너 규격의 표준화 과정,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컨테이너, 컨테이너 시스템을 둘러싼 해운회사와 화주의 갈등과 알력들이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진다. 『THE BOX』의 온전한 주인공은 컨테이너다.
그렇다면 컨테이너를 이처럼 현대 물류의 총아로 키워낸 사람은 누굴일까. 부두에서 트럭에 실린 짐을 통째로 옮겨 선박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멘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아버지, '말콤 맥린'이다.
말콤 맥린은 해운회사 시랜드(Sea Land)를 설립하여 1956년 최초로 컨테이너 운항을 고안하여 실행했다. 들쭉날쭉한 상자와 자루에 실려 세계를 오가던 상품들이 비로소 컨테이너에 실려 질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맥린의 컨테이너 운송 시스템의 발상은 인터넷에 비견되는 물류혁명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07년 5월 '포브스'는 '20세기 후반 세계를 바꾼 인물 15인'에 말콤 맥린을 선정했다.
컨테이너란 딱딱한 알루미늄이나 강철이 용접과 이음새 과정을 거쳐 나무 화물깔판을 깔고 한쪽을 문 2개로 치장한 믿음직한 운송매체일 뿐이다. 거대하고 투박하게 생긴 박스는 귀여운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다. 멋대가리 없이 생긴 직육면체 상자는 어떻게 한국경제를 바꿨을까.
저자는시간과 공간, 비용 면에서 획기적이었던 컨테이너 박스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으며 세계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즉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한 컨테이너는 전 세계 어디서든 공장이 들어서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콤 맥린의 정열, 그의 지략적인 컨테이너 보급 추진은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만약에라도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지구 위 거의 반이나 되는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것이 쉬웠겠는가? 컨테이너화야말로 미군이 전투지 곳곳에서 수많은 세월 동안 잘 먹고 잘 갗춘 군대를 증강시켜 나갈 수 있도록 큰 몫을 담당했다.
『THE BOX』pp.270-280
『THE BOX』pp.270-280
컨테이너와 말콤 맥린이 없었다면 미군의 베트남전 수행도 불가능했을 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 분야에 미치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고 만다. 마크 레빈스는 컨테이너가 한국의 산업구조도 변혁시켰다는 애교섞인 주장을 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 부산에 처음으로 컨테이너 부두가 생겼고, 1995년에는 세계 5대 컨테이너 항구로 올라섰다. 부산항의 포화로 부산 서편에 해안선을 따라 3.2킬로미터에 이르는 지대에 새로이 조성된 부산신항은 길이 12미터 규격의 컨테이너 기준 연간 300만개를 처리할 전망이다.
부산 신항 전경. 컨테이너를 세계 어디에서 어디로 옮기든 복잡한 과정을 최소의 비용으로 거뜬하게 작업을 수행해 낼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컨테이너 항이다. 사진 : BPA
여담으로 이러한 세계무역의 중차대한 역할을 할 부산신항의 이름을 두고 경상남도와 부산시가 싸움이 붙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신항(Busan New Port)"로 결정했다. 이 얼마나 웃기는 판결인가. 물론 저자도 영문이니 당연히 부산신항으로 표기했다.
경상남도는 아쉬웠던지 경계를 가지고 또 트집을 잡았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권한쟁의 심판에서 어떤 웃기는 판결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언제나 정치는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임원들은『THE BOX』를 한 번 읽어보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컨테이너와 컨테이너의 주 활동 무대인 항구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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