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당시 대운하로 대표되는 토건주의와 성장과 경쟁의 기치아래 시장친화적인 실용주의의 거센 파고 앞에 서 있었던 한국대표 지성 4인의 상황인식과 대안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물리학자인 장회익 교수는 생명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생명체와 함께 존재하며, 보다 큰 생명체의 한 부분이라는 ‘온생명주의’를 주창하며, 온생명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은 생명과 생태학적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87년 체제 이후 20년간의 민주정부가 일반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대에 실패하면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고용의 불안정과 실업의 증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창출, 사회해체 등의 현상이 심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실천적 지식인 도정일 교수는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전체주의’가 앞으로 한국사회가 민주적 시민주체를 창출하고 민주화를 성취하는데 가장 위협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시장전체주의가 주입하는 거대한 공포와 선망의 문화가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는 도덕적, 윤리적 실천 강령에서 해방된 휴머니즘 이상에 따라 서방의 민주주의가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해가는 정치 체제를 만들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세력, 특히 386은 어떤 종류의 가치를 부활하려는 도덕적 오만함에 빠져 있었다고 본다.
이처럼 4인 4색의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뚜렷해 보인다. 도덕적 정치체제였던 조선조는 도덕과 정치를 합쳐 놓은 데서 오히려 부도덕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오만하고 독단적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가치와 목적으로부터의 해방이 민주주의라면, 정치 지도자들은 신기루와 같은 4대강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민생의 삶이 어떤 가치나 목적에도 경도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와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힘쓸 일이다.
명분은 밖에 나온 칼이고 양심은 칼집에 들어 있는 칼이다1. 명분의 칼을 지나치게 휘두르면 양심의 칼날이 언제 밖으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극이다.
- 도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도덕을 휘두르면 도덕이 타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며 "사람이 칼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칼은 칼집 속에 있어야 된다."라는 김현승 시인의 싯구를 인용하면서, 김우창 교수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정화되는 것이 아닌, 명분은 순정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렇게 멋진 시적언어로 표현했다(pp242~24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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