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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참사가 아닌, 우리들의 총리 정운찬을 슬퍼한다


[일상] 2009/11/16 17:41 Posted by 오르™
지난 14일 부산 실탄사격장 화제 참사로 일본인 관광객 7명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APEC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있던 중이었던 대통령은 현지에서 만난 하토야마 일본 총리에게 즉각 사과했다.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일인가"라고 장탄식을 내놨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사건 발생 다음 날, 바로 부산을 찾아 일본인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과 강희락 경찰청장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사죄 성명을 발표했다.

부산참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의 저급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국인에게는 객지인 타국에서의 참사가 얼마나 애절하고 비통하겠는가. 그래서 우리 정부의 자아비판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릎 굻은 정운찬 총리의 모습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다급한 황송함이 묻어난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일본인 유족들 앞에 황급히 무릎을 꿇은 15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꼭 300일 되는 날이었다.

우리들의 총리는 용산참사 발생 9월만에 유족을 찾았었다. 무릎은 꿇지 않았다. 그 뒤 용산참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용산참사 때(좌)와 부산참사(우)때의 총리의 자세는 완연히 다르다(사진 : 프레시안)

무릎꿇은 정운찬 총리의 모습은 소설 한 대목을 떠오르게 한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 누루하치에게 찾아가 땅에 머리를 찧어며 항복하는 장면이다. 하필이면 왜 이 대목이 생각나는지 가슴이 서늘하다.

조선 왕이 말에서 내렸다. 조선 왕은 구층 단 위의 황색 일산을 향해 읍했다. 멀어서 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단 위에서 칸이 말했다. 말은 들리지 않았다.(중략)

- 일배요!
조선 왕이 구층 단 위를 향해 절했다. 세자가 왕을 따랐다. 조선 기녀들이 풍악을 올리고 춤추었다. 기녀들의 소맷자락과 치마폭이 바람에 나부꼈다. 풍악 소리가 강바람에 실려 멀리 퍼졌다. 홍이포가 터지고, 청의 군장들이 여진말로 함성을 질렀다.
조선 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은 먼 지심 속 흙냄새를 빨아들였다. 볕에 익은 흙은 향기로웠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 조선 왕은 이마로 땅을 찧었다.
청의 사령이 다시 소리쳤다.

- 이배요!
조선 왕이 다시 절을 올렸다. 기녀들이 손을 잡고 펼치고 좁히며 원무를 추었다. 풍악이 자진모리로 바뀌었다. 춤추는 기녀들이 동작이 빨라졌다. 속곳이 펄럭이고 머리채가 흔들렸다. 다시 홍포가 터지고 함성이 일었다. 조선 왕이 삼배를 마쳤다.(중략)

강화에서 끌려온 시녀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참았다.
조선왕은 황색 일산 앞에 꿇어 앉았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세자가 따랐다. 개들이 황색 일산 안으로 들어왔다. 칸이 술상 위로 고기를 던졌다. 뛰어오른 개가 고기를 물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중략)

정명수가 끓어 앉은 조선 왕과 세자 앞으로 나와 칸의 조칙을 읽었다.
- 김훈의 『남한산성』pp.35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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