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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전쟁 * 해지펀드 사람들의 영광과 좌절, 바턴 빅스


[독후 칼럼 혹은 서평/투자 서적들] 2009/10/23 00:13 Posted by 오르™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은 어떤 색깔일까. 세간에 알려진대로 그들은 세계의 금융시장을 교란시키고, 순진한 투자자들을 약탈하는 금융계의 해적 떼이며, 탐욕스럽고 사악한 돼지들일까.

만약 헤지펀드의 세계에 대해서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턴 빅스의 <투자전쟁>을 집어들어도 좋다. 이 책에는 헤지펀드를 오랫동안 운용해 온 경험과 지혜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저자는 헤지펀드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 둘 중 하나의 결론 사이에서 벌이는 그야말로 필사적인 모험이라고 말한다.

그가 헤지펀드를 처음 시작했던 1965년 6월의 첫날 오후에 마이너스 5%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위장에 구멍이 생겼다는 일화는 헤지펀드가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주는지 실감할 수 있다.

21장으로 구성된 <투자전쟁>에서 저자는 모건 스탠리에서 재직할 때 일어난 일들과 독자적인 헤지펀드를 운용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웬만한 작가보다 더 유려한 문체로 기술해 놓았다.

이 책은 여느 투자서적과는 그 품격을 달리하는 매혹적인 책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경험한 일들을 가감없이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투자생활에서 축적된 함의들을 문학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바턴 빅스는 월스트리트 로얄패밀리의 일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문 투자가로 뉴욕 은행의 최고 투자책임자였으며 수 많은 주식회사의 이사이기도 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이 그의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와 경제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곤 했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 셋이 18세가 되었을 때, 전체 자산 구성의 합계 금액이 대략 15만 달러가 되는 포트폴리오를 주어 로얄패밀리를 위한 포석을 뒀다.

그의 할아버지는 당시 최고의 리서치 회사이던 베이커 위크스를 운영했고, 그의 남동생 제레미도 예일대를 나와 런던정경대LSE에서 2년동안 공부하고 월스트리트에 유에스 스틸 앤 카네기 연금 펀드를 운용했다.

그러나 바턴 빅스는 대학시절 미식축구선수였고 위대한 미국 단션선에 수록될 소설을 쓰려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예일 대학교 경영학과를 1955년 6월에 수석 졸업한 그는 미국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정찰 임무를 좋아했고 침투 및 탈출 교육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육체적인 훈련과 운동을 즐겼다.

제대 후 그는 랜든에 있는 예비 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교사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또 세미프로 팀에서 미식축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 쓰기에 전념했다.

그러나 서서히 미식축구도 싫증이 났고 출판사들로부터 퇴짜를 맞는 일도 지겨워진 그는 아버지에게 투자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1961년에 E.F.휴턴이라는 회사에 분석가로 취직하면서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휴턴의 대표이던 실반 콜먼은 아버지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능력 있는 아버지가 물려준 소위 '은 숟가락'의 덕을 본 셈이라고 바턴 빅스는 겸손하게 말한다.

1964년 초까지 3년 동안 E.F. 휴턴에서 분석가로 일한 그는 1965년 6월 딕 래드클리프와 970만 달러로 페어필드 파트너스를 운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973년 5월 모건 스탠리에서 연구조사 및 투자관리를 할 팀을 조직할 것을 그에게 의뢰했고, 그는 30년 동안 지휘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바턴 빅스는 최고 투자 전략가로로 명성을 쌓았다.

드디어 2002년 말, 바턴 빅스는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마드하브 다르와 시릴 물-베르토와 함께 헤지펀드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여 헤지펀드 "트랙시스 파트너스"를 설립한다. 이 펀드의 현재 운용자금은 1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은 투자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옥에 티라면 역시 번역이다. <주식 투자의 심리학>을 번역한 바 있는 역자는 이 책에서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번역판이 나와 있는 저 유명한 <증권분석>을 <유가증권분석>으로,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을 <어느 투자자의 회상>으로 번역한다. 번역본이 나와 있을 때는 직역하지 않고 번역명을 따르는 것이 관례임에도 제목을 바꾸는 저의가 무엇일까.

또한 <증권분석>의 공저자 "데이비드 도드"를 "데이비드 도저"라고 하지를 않나, 도가 지나쳤다. 이럴 때면 늘 원서를 직접 읽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전문분야의 번역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가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전문가들은 영어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게을러서 그럴까.


출처 : 바턴 빅스, 이경식 역, <투자전쟁-헤지펀드 사람들의 영광과 좌절>, Human & Books,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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